차가운 디스토피아를 우아하게 그려낸 순도 높은 SF
우주항공회사 '가타카'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토성 비행을 일주일 앞둔 인재인 '제롬'이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그의 진짜 이름은 '빈센트'이다. 빈센트는 완벽한 우성 인자들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미래의 열성 인자로 태어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성공을 위해서 감쪽같이 신분을 바꾸면서 살아간다. 은밀한 DNA 중개와 혹독한 수술을 통해서 자신의 열성을 감추고 우성 인자인 '제롬'으로 살아가고 있는 하루하루는 피가 마르는 상황의 연속이다. 점점 조여드는 살인사건의 수사망에 치열하게 대응하는 빈센트는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하고서 꿈꾸던 토성 탐사 비행을 떠날 수 있을까. 창의적인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앤드류 니콜'의 SF 영화 '가타카'이다.
앤드류 니콜의 창의적인 시나리오
이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앤드류 니콜'은 사실 영화 연출보다는 시나리오 작가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바로 '피터 위어'의 대표작인 '트루먼 쇼'의 시나리오를 썼던 사람이다. '트루먼 쇼'는 한 개인의 삶이 집단에 의해 조작된 미디어 쇼였다는 설정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영화 '시몬'은 사이버 캐릭터가 커다란 인기를 얻는데서 생겨나는 이야기들을 다룬 설정이 역시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영화 '가타카'는 모든 것이 유전자로 결정되는 미래 사회의 설정으로 눈길을 끈다. 그의 각본은 기발한 착상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 다음에 그 안을 굉장히 세심한 아이디어로 채워 넣는 데 있어서 상당히 뛰어난 저술 능력을 갖고 있는 시나리오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극 중 등장하는 우주 항공 회사의 이름이기도 하면서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가타카'라는 단어 자체가 앤드류 니콜이 만들어낸 단어이다. 네 가지 DNA 염기를 가지고 그 알파벳에 해당되는 머릿글자만을 가지고 만들어낸 것이 '가타카'라는 단어이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미래는 태어나자마자 질병에 걸릴 모든 확률들이 다 숫자로 표시가 되고, 심지어는 예상되는 수명까지 숫자로 표시되는 다시 말해서 유전자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유전자 운명론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유전공학에 따라서 유전 정보들을 조작해서 만들어낸 우성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자랑스러운 사랑의 결과로 태어나게 된 열성 인간, 바로 빈센트가 벌이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얼핏 굉장히 발달된 과학기술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디스토피아의 차가운 이면을 드러내고 있는 미래 사회에 예리한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우아한 시각디자인
영화 '가타카'는 굉장히 순도 높은 SF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우수한 것은 미래사회를 생생하고도 우아하게 그려낸 시각디자인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에서는 조명이나 카메라 필터 같은 것을 이용해서 황록색 혹은 청록색 계열로 차갑고도 낮게 가라앉힌 화면 색조가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특히 극 중에 등장하는 '가타카'의 내부 모습을 보게 되면 굉장히 청결하고도 깔끔하지만 차갑고도 냉정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사회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정말 잘 구현하고 있다. 이 영화는 의상이나 헤어 스타일에서도 굉장히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머리를 틀어 묶어서 뒤로 깔끔하게 올리고 있다. 남자 주인공은 하나같이 50년대 스타일로 머리를 치켜 깎아서 굉장히 짧고 단정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다. 이들이 등장할 때는 언제나 제복이나 양복을 입는다. 그런 것을 통해서 통제회된, 그리고 기계화된 미래 사회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총보다 주사기를 훨씬 더 자주 등장시킴으로써 유전 공학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의 핵심 주제를 시각적으로 자주 거론하기도 한다.
강렬한 주제의식
'가타카'는 메시지가 명확한 영화이다. 극 중에 등장하는 미래 사회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인간은 예측가능하고 완벽한 인간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인간들이 지배하는 결정론적이고 또한 전체주의적인 미래 사회가 사실은 얼마나 핏기 없고 끔찍한 사회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는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이점에서 이 영화는 유전공학의 발달이 '우생학'과 연결되는 것에 대해서 크게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생학(Eugenics)은 인간을 유전적으로 개량하려는 학문적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극 중 빈센트의 반대편에서 완벽한 유전자를 갖고 있지만 비극적인 인물로 '제롬 유진'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의 '유진(Eugene)'이라는 이름은 바로 우생학을 뜻하는 Eugenics에서 따온 이름이다. 반면에 주인공의 이름은 '빈센트 프리맨'이다. 'Free man'이라는 성 자체가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뜻인 데서 알 수 있듯이 결국은 자유의지에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스스로 박차고 나가서 개척해나가는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다만 이 영화의 주제의식은 '운명은 개척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노력하는 자에게 꿈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라는 일반적인 성공담에서 흔히 하는 주제 이야기를 굉장히 납작하게 귀결시켜서 전달함으로 인해서 결국은 관념적인 메시지로만 그치는 아쉬움이 있다.
영화 '가타카'에서 결정적인 한 장면을 꼽자면, 극 중에 등장하는 빈센트와 안톤 형제가 바다에서 수영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다. 이 두 형제는 극 중에서 세 번의 수영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두 번째 대결이 인상적이다. 타고난 대로라면 우성 유전자만으로 증류된 동생 안톤이 이겨야 하지만 이 두 번째 대결에서는 빈센트가 강한 신념으로 동생을 이긴다. 자신의 타고난 우성을 믿고 자만해서 물에 빠진 안톤을 열성인 형 빈센트가 오히려 구해줌으로써 타고난 조건이 성공과 실패를 항상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믿게 되는 계기가 되는 장면이다. 빈센트라는 인물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창조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한 디딤돌이 되는 사건을 잘 보여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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