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꽃미남이 된 산골 마을 소녀 미츠하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던 날, 이 영화는 그날의 그들에게서 시작한다. 산골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 미츠하는 평범한 일상을 지내다가 어느 날 가족들과 친구들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어제의 내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미츠하는 마을 무녀 가문의 장손녀이다. 마을의 풍습을 지키기 위해서 그녀는 실을 잣고 풍양제를 지내고 제사용 술을 만든다. 하지만 전통은 전통이고 몸과 마음은 평범한 사춘기 소녀에 불과한 미츠하는 산골 마을에서 마을을 대표하는 무녀로 살아가는 일이 별로 탐탁지 않다. 그녀의 소원은 다음 생에는 도쿄의 꽃미남으로 살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녀의 소원은 직통으로 하늘에 연락되는 건지 자고 일어나 보니 정말로 도시에서 살고 있는 훈남이 되어 있었다. 소년의 몸을 하게 된 미츠하는 당연히 이게 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몸의 원래 주인인 소년 타키는 뭘 하고 있는 걸까? 타키는 꿈속에서 산골마을 소녀인 미츠하가 된다. 미츠하는 꿈속에서 도시에서 살고 있는 고등학생 타키가 된다. 그런데 깨고 나면 곧바로 희미해져 버리는 기억 때문에 이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명의 동갑내기 고등학생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서로의 몸이 바뀌게 된다. 몸이 바뀌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미츠하와 타키는 서로 규칙을 정한다. 몸이 바뀌었을 때의 일을 휴대전화에 기록하는 것이다. 어느 날 미츠하의 몸을 하고 있는 타키는 할머니를 따라 가문의 신지를 방문한다. 그곳에 미츠하가 만든 미인주를 봉헌하고 온 날 동생이 혜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바로 그때 할머니가 타키에게 너는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하고, 타키와 미츠하는 다시 몸이 바뀐다. 타키는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만난 선배와 데이트를 하는데 미녀와 데이트를 하면서도 타키는 전혀 집중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머릿속에 딴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는 얼굴도 예쁜데 눈치도 엄청 빠르다. 타키의 마음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알아챈다. 타키가 좋아하는 그 아이는 친구들과 마을 축제에 참가한다. 마침 마을의 축제날과 1200년 만에 돌아온다는 혜성의 관측일이 겹쳐서 축제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날 미츠하는 하늘을 수놓는 혜성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이날부터 두 사람의 몸이 바뀌는 일은 없어지게 된다. 더 이상 서로의 몸이 바뀌지도 않자 타키는 불안해지게 된다. 아직 좋아한다는 말도 못 했기 때문이다. 타키에게 남아있는 기억은 마을의 풍경뿐이다.
미츠하와 타키의 만남의 결말
그림 몇 장 가지고 어딘지도 모르는 장소를 찾아가는 게 쉬울 리가 없지만 묻고 물어 타키는 미츠하가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내게 된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두 명의 주인공과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까지 모두 모르고 있었던 사실은 이 두 사람이 3년의 기간을 두고 각자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츠하의 마을에 유성이 떨어져서 미츠하까지 포함한 마을 사람들 500명이 사망하기 한 달 전의 시간대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타키의 시간대가 겹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이 두 사람은 만날 방법이 없다. 미츠하는 이미 3년 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왜 그런 식으로 만나게 되었던 걸까? 타키는 미츠하일 때의 기억을 더듬어서 할머니와 함께 갔던 가문의 위패를 찾아간다. 미츠하가 만든 미인주를 마시는 순간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이 되자 미츠하와 타키는 마침내 같은 시간 안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반가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당장 유성이 떨어지게 될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두 번 다시 서로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손바닥에 이름을 적어 넣는다. 타키가 먼저 적고, 미츠하가 타키의 손에 이름을 적으려는 순간, 황혼의 시간은 끝나버린다. 이제 미츠하만 남았다. 그녀는 이제 곧 유성이 떨어져서 박살이 나게 될 마을에서 자기 자신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을 구해내야 한다. 그런데 아까 만났던 남자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손바닥을 펴보니 그의 이름이 아닌 '널 좋아해'가 적혀있다. 잠시 후 혜성에서 갈라져 나온 유성이 미츠하의 마을을 덮친다. 그리고 타키는 이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3년 뒤의 시간에서 일어나게 된다. 타키가 깨어난 3년 후의 시간대에서 미츠하의 구조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유성이 떨어진 피해 범위에서 마을 사람들을 대부분 대피시키는 데 성공하게 된 것이다. 미츠하와 타키의 만남은 어쩌면 수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서로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고 도시의 인파 속에서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은 앞으로 영영 만나게 될 수 없게 되는 걸까. 그들에게 허락된 인연은 여기서 끝나게 되는 걸까.
원작이 없는 애니매이션, 그러나 빈틈 없는 영화
이 영화는 엄청나게 섬세한 작화와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당신의 편견을 완전히 정리해 버릴 것이다. 그래서 어느샌가 보는 사람까지 타키와 미츠하가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영화였다. 영화 '너의 이름은'은 원작이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마치 원작이 있는 것처럼 스토리에 빈틈이 하나도 없다. 장면이 굉장히 잘 짜여 있고 매우 섬세하게 연출되었다. 또한 이야기의 연결을 굉장히 잘하고 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매듭끈은 사람의 인연을 암시하고 이는 곧 시간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영화에서 미츠하의 머리끈이 낙하하는 혜성의 꼬리로 연결되고 이것이 생명의 잉태로 이미지가 이어져 신생아 미츠하의 탯줄로 그려지는 장면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우주적 관점과 주제 의식을 세밀한 이야기의 연결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2017년 '너의 이름은'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일본 사람들이 2011년에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2014년에 많은 사람들을 잃은 아픔이 있다. 영화를 보며 스치는 생각은 지나간 비극의 현장에 지금의 우리가 있었다면 그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영화에서 미츠하와 친구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외치는 장면은 그 비극의 순간들이 떠올라 우리를 아프게 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너의 이름은'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전율은 우리가 감독의 역량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겪어 온 아픈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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