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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 아일라 가슴으로 낳은 자식과의 뜨거운 재회

by 행복한뚜지 2023.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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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라 포스터

 

가슴으로 낳은 자식과의 뜨거운 재회

1950년 6월 평화로운 마을에 갑작스레 포격이 쏟아진다. 인민군이 남침을 시작한 것이다. 어린 소녀만이 혼자 살아남고 마을 주민들은 모두 죽어가고 있다. 이 소식은 평화롭게 살고 있는 터키의 '슐레이만'에게까지 전달된다. 슐레이만의 직업은 군인이다. 그는 한반도로 가는 항해길에 오른다. 그리하여 평안도 군우리에 터키군이 도착한다. 이곳에서도 곧 전쟁이 끝날 것 같다는 희망 섞인 소문뿐이다. 인기척이 들려 수색해보니 그 안에 어린 소녀 하나만 생존해 있었다. 소녀를 마주한 슐레이만은 그 아이가 가족을 모두 잃은 것을 보고 데려가기로 한다. 슐레이만과 동료들은 소녀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로 한다. 소녀의 얼굴이 달처럼 동그랗다는 의미에서 '아일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하지만 슐레이만은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아일라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아일라와 헤어져야만 하는 슐레이만은 돌아올 거란 약속만을 남긴 채 어렵게 발걸음을 뗀다. 그렇게 슐레이만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애인이었던 '누란'은 이미 다른 사람과 약혼한 뒤였다.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슐레이만은 아버지가 정해준 여인과 결혼을 하고 이스탄불에 정착한다. 일상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슐레이만은 아일라의 소식을 듣기 위해 노력한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아내 '니멧'이다. 그녀의 적극적인 도움에도 불구하고 아일라를 찾는 일은 간단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47년이 흐르고 1999년 슐레이만이 살고 있는 이스탄불에 큰 지진이 발생한다. 집이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슐레이만은 아일라의 사진을 챙긴다. 그리고 가장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온다. 2010년 4월, 드디어 슐레이만은 아일라를 만나기 위해 서울을 찾는다. 변해버린 서울을 보며 슐레이만은 감회에 젖는다. 다음 날 슐레이만은 앙카라공원에서 아일라를 기다린다. 아버지로서 한 약속을 지키러 온 슐레이만은 60년 만에 그 약속을 지키는 데 성공한다. 

 

국경을 초월한 애틋한 부성애

영화 아일라는 터키와 한국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공동 제작한 영화이다. 터키에서 먼저 개봉을 해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017년 터키에서 개봉한 전체 영화들 중 2위를 기록했다. 6.25 전쟁의 감동 실화는 터키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6.25 전쟁 참전국인 터키에게는 자랑스러운 역사일 듯하다. 1950년대 한국에 대한 인식은 그저 생소한 나라일 텐데, 그런 나라를 위해 터키는 수많은 병사를 파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실화를 통해 전쟁 속 휴머니즘까지 선사했다. 역사의 승자는 기록하는 자인 것 같다. 왜냐하면 기록을 해야 그게 역사가 되고 이 아일라 영화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만큼 과거를 기록한 자료가 중요했다. 전쟁 당시 슐레이만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고, 그 카메라로 약 400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아일라의 사진을 간직해온 슐레이만의 노력 덕분에 아일라의 이야기를 세상에 소개할 수 있었다. 만약 기억에만 의존해 영화를 제작하려 했다면 분명 한계가 존재했을 것이다. 수많은 사진과 기록이 남아있었기에 마지막까지 슐레이만과 아일라 두 사람의 재회가 가능했었다.

 

형제의 나라 터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6.25 전쟁에 참전해준 터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커졌다. 당시 유엔군 참전국은 총 21개국으로,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전투부대 파견국은 터키를 포함해 16개국이다. 게다가 터키군은 징집병이 아닌 대부분 자원병이 많았다고 한다. 배를 타고 한 달 정도 소요되는 장거리 파병이었다. 터키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인원을 파병했다. 터키군은 파병 인원 대비 사상자 비율이 가장 높을 만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반면, 아일라는 국내에서는 관심받지 못한 영화였다. 우리나라가 참전국의 도움과 희생을 쉽게 잊은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국내에 한국전쟁의 아픔을 다룬 수많은 한국 영화들이 있지만 6.25 전쟁 참전 병사나 참전국을 다룬 영화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의 아픔 속에 잊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터키 영화 속에 그려진 한국의 모습

영화에서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때까지 계속 '아리랑' 노래를 들려주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실제로 나이 아흔이 넘은 슐레이만이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로 아리랑을 소개하며 영화에서 이 노래를 꼭 사용해주길 추천했다고 한다. 슐레이만의 제안대로 영화에는 아리랑 노래가 삽입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잔 울카이 감독'은 영화 곳곳에 한국적인 요소를 잘 담아냈다. 영화에서 끊이지 않는 포화 속 치열했던 '군우리 전투' 역시 실제로 있었던 전투였다. 군우리 전투는 1950년 11월, 청천강 부근에서 치러진 터키군과 중국군의 최초 교전이다. 중국군의 위협적인 공세에 한국군과 유엔군이 압박을 받는 상황에 군우리에 있었던 터키 여단이 강력히 저항하며 덕분에 유엔군이 철수할 수 있는 기간을 확보했다. 그 이후 터키군 또한 철수하려던 시점에서 그때 슐레이만이 부모를 잃고 울고 있던 어린 소녀 아일라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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